잉글랜드 국적
센터백의 포지션을 가진
UEFA 올해의 수비수 3회,
UEFA 올해의 팀 4회 선정만 보더라도
그는 최고의 활약을
인정받은 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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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임대되었던
시기를 굳이 제외한다면
주장을 맡는 등
레전드의 길을 걸어온 선수이며
불륜 스캔들 등
좋지않은 사건에 연루되며
그의 선수생활이
퇴색된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선수이다.
굉장히 어린시절에는
웨스트햄 유스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 나갔으며
1995년,
첼시 유스팀으로
팀을 옮기면서
EPL 사무국에서도 존 테리의
유스팀은 첼시.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계속 뛰다가
큰 키와 여러가지 유능함을 보았던
첼시 당시 코치들은
포지션 변화를 시켰으며
약 20년간
팀을 이끄는
수비수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된다.
유스에서 계속 성장하며
첼시와 프로계약을 단숨에 맺었으며
1998년,
리그에서 데뷔하게 되면서
EPL 첫 무대를 가졌다.
잠시
노팅엄 포레스트에
임대되어 반 시즌을 뛰기도 했지만
복귀 후,
조금씩 팀에 적응하며
주장 드사이와 함께
센터백 듀오로 활약했으며
임대 후
복귀 시즌이었던
00-01 시즌
26경기를 소화하는 등
조금씩 첼시에서
자신의 지분을 높여갔다.
드사이가
잦은 부상으로 팀을 이탈하자
존 테리는
중앙 수비의 중심이 되었고
맡게 되면서
첼시 수비의 중심
로만 구단주는
막강한 재정을 앞세워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선수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감독을 찾다가
낙점했으며
그의 영입으로 인해
첼시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존 테리 역시
확고한 주장으로 선임 되면서
전성기를
함께 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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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시즌
리그 25경기 무실점을 포함해
지금도 역대급으로
남아있는
리그 최소실점(15실점),
역대 최다승리(29승)과 최다승점(95점)
만들어내며
테리는 이 해에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꾸준하게 활약하며
영광도 누렸다.
존 테리는
06-07 시즌
재계약 과정에서
13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으며
EPL에서 가장 높은 주급을 받는 선수로
기록된 바 있으며
첼시는
무리뉴가 떠나고
감독직이 계속 바뀌면서
암흑기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로만 구단주는
맘에 들지 않으면 감독을
버릇처럼
계속 바꾸어 대면서
첼시는 흔들리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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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회자되는
맨유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운명적인 승부를 펼쳤고
마지막 키커로 나섰던 테리가
득점하면
첼시가 우승하는 순간...
킥을 하던 도중
미끄러진 테리는 결국 실축했고
뒤에 나선 아넬카도
실축하면서
결국 챔스우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돌아가며
불명예의 순간...
그랜트, 스콜라리가 경질되고
히딩크 감독이
임시 감독직을 맡는 등,
첼시 감독은
계속해서 성적과 경기력에 따라
바뀌어갔으며
존 테리는
전술에 부합하지 않는 감독에 따라
벤치에 있는
시간들이 가끔씩
존재하기는 했지만
주장으로써
변함없이 팀을 이끌며
묵묵히
첼시를 지켜갔고
안첼로티, 보아스 등
감독들도
첼시를 거쳐 갔으며
첼시는 무리뉴 시절 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시기가 길어졌다.
보아스 감독까지
경질 되면서
수석코치였던 디 마테오가
임시 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리그 6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내었지만
FA컵 우승과 함께
뮌헨을 물리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기적의 시즌을 만들었다.
존 테리
개인적으로는
챔스 4강에서 퇴장을 당하며
결승을 못 뛰었으나
드로그바의
극적인 헤딩 동점골 등
명승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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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감독으로 영입된
베니테즈 감독은 테리가
늙었다고 판단,
후보로 내려버렸으며
한 시즌
리그에서 14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무기력한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13-14 시즌을 앞두고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테리는
다시 무리뉴의 남자가 되어
주전이 되었고
부진을 거듭하던
첼시가
다시 조금씩 날개를 펴는 데
활약했으며
결국 14-15 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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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후 부터 테리는
조금씩
체력저하와 함께
폼이 떨어진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30대가 넘어가면
1년계약정책을
가져가고있는 첼시 구단과
선수들의
갈등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
존 테리 역시
1년 재계약을 맺으며
첼시와 여정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슬슬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시점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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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시즌,
루이스와 게리 케이힐이
중앙 수비의
중심으로 활약하면서
테리는 점점 더 주전에서 멀어졌고
결국 이 해는
그가 첼시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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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마지막
38라운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그의 등번호 26번과 동일한
26분에 케이힐과
교체되면서
기립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게 되면서
첼시 커리어를 끝냈다.
아스톤 빌라는
2부리그였고 존 테리는
주장을 맡으며
팀의 중심을 이끌어 줄 것을 기대 했으나
초반에는 폼이 떨어져서
실수가 잦은 편.
하지만,
클래스를 발휘하며
적응하더니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이제 좀 뛰나 싶었는데 부상을 당하며
공백이 예상되었고
여러가지
개인적으로나 팀적으로
아쉬운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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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스톤 빌라는
오히려 존 테리 공백 속에
뛰어난 경기력으로
순위가 지속적으로 올라갔고
승격까지 눈 앞에 두었지만
아쉽게 실패.
존 테리
역시 계약만료가 되며
새로운 팀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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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스톤 빌라였을까?
싶었는데
은퇴 후,
의문이 풀렸다.
2003년
국대에 데뷔했으며
유로2004부터 퍼디난드와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
2006 독일월드컵에서
괜찮았고
이후,
베컴을 대신해서
완장을 달고 뛴 첫 국대경기에서
득점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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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8
예선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비슷한 시기에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2012를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했으며
메이저 우승은
결국 이루어내지 못했다.
2011년 9월 12일.
미국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이었고
존 테리는 당시 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에게
9.11 테러 관련하여 조롱을 하는
잘못된 인성을 보이며
비난을 받았고
결국 월드컵 출전도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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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당시 토트넘 소속의
센터백 레들리 킹에게 다가가
" 건방진 검은 원숭이 "
라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통해
벌금을 문 적이 있고
여기서 끝이 아니고
2011년 안톤 퍼디난드에게
" 검둥이 " 라고
발언하며 22만파운드의
벌금을 다시 물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훗날 첼시와 퀸즈파크 레인저스
리그 경기에서
박지성과 퍼디난드를 포함하여
모든 선수들이
경기 전,
테리와 악수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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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 보이듯
같은 팀에서 뛰었던 웨인 브릿지의
아내와 불륜 스캔들
주인공이 되었다.
웨인 브릿지가 결혼하기 전,
여자친구였던
바네사와 불륜을 저질렀고
심지어 임신을 시키고
낙태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
후에 밝혀지며
브릿지는 크나큰 충격과 함께
국대 승선 거부와
결국 은퇴 선언을 했으며
존 테리는
국민 나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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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각기 다른 팀 소속으로
리그 경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역시나 경기 전, 브릿지는 테리의
악수를 거절했으며
팀 전원이 의기투합이 되었는 지
테리의 첼시를
4:2로 꺾어 버렸고
경기 내내 브릿지는 프로다운 모습으로
테리에게 부합되지 않는
가해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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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차구역에 무단으로 주차했으며
몰랐다는 변명을 했지만
얼마 후,
또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며
정말 인성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으며
뺑소니 사건까지
일으키면서
정말 못된 ㅅ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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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광팬이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인연이 되어
퍼거슨 감독과
찍은 사진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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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 감독이
첼시에 있으면서 선수들에게
태업을 주도한
선수가 존 테리였음이 밝혀졌고
후에 엄청난
욕을 먹은 바 있는데
애슐리 콜이
인터뷰를 통해 태업에 대한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기에
빼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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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연이 뛰고있는 바로 그 팀이며
해체위기가 오자
존 테리가 팀을 살려보겠다고
회장 자리에
앉았으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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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시절,
킹앙리는 말그대로 사기캐였으며
센터백으로써
무수한 장점을 가지고있는
테리의 유일한 약점이
스피드이기에
스피드가 뛰어났던 앙리를
상대하기 어려워 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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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경기 도중,
존 테리가 의식을 잃어버리며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셰브첸코가 응급처리를
재빠르게 가져가며
존 테리의 의식이 돌아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이다.
많은 팬들은
첼시로 이적하여 셰브첸코가
유일하게 잘한 일이
이것이라며
비아냥 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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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흐 골키퍼가 부상을 당하여
교체로 나간 뒤,
대신 들어온 쿠디치니까지 부상을 당하자
후보 골키퍼가 없어진
첼시는 주장 존 테리를 골키퍼로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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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으로
정말 닮...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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