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는 선수 중 한명으로
김은중과 함께
대전의 전성기와 인기를
이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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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외모와 함께
화려한 축구를 즐기던 스타일로
체력적인 열세가
결국 더 드높은 곳으로 가지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며
아쉬움을 보인 선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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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낙지가게를 운영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기도 했지만
별안간 다시
현역복귀를 통해
싱가포르 리그를 씹어먹기도 했다.
대학 시절,
J리그 진출을 꿈꾸기도 했지만
트래프트 제도 등에 묶여
결국 졸업 후
자신이 일본에 제안받았던
금액보다 훨씬 더 적은 금액을 받고
대전에는
외롭게 고군분투 중인
김은중이 있었고
김은중에게 패스를 줄 수 있는
미드필더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둘은 대전의
핵심선수가 되어
대전의 공격을 이끌게 되는데
결국 2001년,
대전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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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김은중과 이관우는
축구실력과 함께
잘생긴 외모로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각자 이름을 하나씩 딴
관중동원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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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쁨도 잠시일 뿐
대전의 재정적 문제는 깊어졌고
결국 슈퍼스타들을
팔아야 구단운영이 가능했던
구단에서는
김은중을 FC서울로,
이적시키고 말았는데
이 과정에서
이관우와 상의도 없이
이적료를 받아 챙기기 위해서
FA로 풀리기 전,
수원과 협상을 벌인 대전 구단은
이관우에게
적응기간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수원 미드필더의
중심이 되어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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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되었고
그 기간에 주장도 맡는 등,
수원에서
더할나위 없는 시기를 보낸 이관우.
08시즌에도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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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듬 해부터
이관우는 대전 시절부터
종종 골머리를 앓았던
출전시간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폼이 떨어지고
수원에는 또 다른
자원들이
계속 영입 됨에 따라
이관우의 자리가 줄어들었는데
10시즌 이후,
FA가 되면서 수원은
이관우와의 계약을 포기했고
이관우 스스로에겐
FA가 된 이관우를
친정팀 대전에서 데려간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이관우 스스로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폼이 떨어진 상황에서
친정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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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관우는
다른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며
그대로 은퇴를
선언하는 가 했으며
그 와중에
말 그대로
선수생활은 이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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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놀랍게도 2013년,
이관우가 복귀한다는 기사가 뜨면서
팬들은 어리둥절??
하지만,
실제로 이관우는 현역복귀했고
체중이 많이 늘긴 했지만
여전한 클래스로
10골 이상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그렇게 한 시즌을 보낸 뒤,
직접적인 은퇴 선언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게 된 시리우스 이관우.
K리그를 지배했던
월등한 능력을 지닌 미드필더였지만
유독 A대표와 인연이
크지 못했던 선수 중 한명이다.
기술은 뛰어났지만
말 그대로
많이 뛰는 축구를
선호했던 역대 국대 감독들의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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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를 돌이켜보면
1997년 20세이하 청소년 월드컵
멤버로 주전으로 뛰며
브라질에게
3:10으로 역사적 대패했던
멤버 중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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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패스를
비롯한 축구를 즐겼던 선수이지만
결국 국대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스타일.
한 때, 문장 그대로
K리그에서 아무리 활약해도
해외에 진출한 선수에게
국대 선발에서 밀린다는 논란이 있었고
그 중심에
최대 피해자가 이관우라는
얘기가 종종 있었다.
맞다, 아니다
확답을 할 순 없지만
내가 기억하기에도 이관우가 폼이
절정으로 좋았을 시절에도
국대에 소집되지 못했던 기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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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과 계약이 끝난 후,
이관우는 선수로써 생활을 이어가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낙지가게를
오픈하며 놀라움을 주었는 데
그의 관한
인터뷰 기사와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본래 요리를 좋아했고
가게를 차리며
재료를 공수해오고 요리하는 것까지
본인 스스로 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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