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황선홍과 함께
H-H라인으로 불리며
팀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했던
.
.
.
대한민국
뛰었고
월드컵에서도
득점을 터트리는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
.
.
은퇴 후,
감독으로써의 행보 및 여러가지
상황들에 놓여지며
각종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선수 시절만 본다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고등학교 시절,
신장이 급격히 커버린 케이스로
대학을 졸업한 후
곧장 입대했다.
.
.
.
전역 후,
포항은 여러가지 문제가
존재했던
홍명보를 포기한 채
일명 FA로 풀어주었고
그를 영입한 것은 그 당시 유공.
하지만,
포항은 곧장 유공과의
홍명보를 다시 데려오게 되면서
1:8 트레이드로
데려왔던 황선홍과 비슷한 케이스
.
.
.
1992년 K리그에 데뷔했고
그 해에
베스트11은 물론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행보 시작이었고
1994년 미국월드컵을
거치게 되면서
홍명보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꾸준한 활약으로
리그 베스트11에 계속 올랐으며
월드컵의 활약으로
가져주었지만
소속팀에서 그를 놓아주지않아
결국 유럽에 못가고,
뒤늦게 이적하게 된 곳은
1997년
J리그 벨마레로 이적했고
그 당시,
물가로 따지면 파격적인 수준.
.
.
.
데뷔전에서
보복성 태클로 인해
불명예를 경험하기도 했으며
가장 큰 문제는
팀에 일본 국가대표
로페즈, 나카타가 있다는 이유로
맞지않은 옷을 입은
홍명보의
활약도는 좋을 수 없었고
더불어 팀 자체가
재정난을 겪으며
높은 연봉자들이 정리되는
수순에 따라
다시 한 번,
J리그 하위권에서
놀던 가시와 레이솔은
홍명보 영입과 함께
3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고
그에게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한다.
.
.
.
그 당시,
J리그는 외국인 용병을
3명 두는 것으로 제한을 두었고
각각 데려오며
모든 용병을
대한민국 국대 3인방으로
채우기도 했으며
좋은 활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끌며 팬들의
환호를 얻은 시기.
.
.
.
90년대 일본은
A매치에서 한국에게
기를 펴지 못했는데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
어떻게 보면
원수와도 같은 선수를
리그에서는 일본 J리그가
보유하고있는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1년 국내로 돌아와
2년의 계약을
2002 한일워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홍명보의 가치는
말 그대로 환상적으로 올라가는 데
월드컵 이후,
홍명보를 보기위해
포항의 홈구장은
.
.
.
가시와 레이솔에서는
계약 연장 및 지도자 보장까지
들이밀며
그를 잡아두려 했지만
국내로 돌아왔던
그는 자연스럽게
포항에서 은퇴할 것으로 보였지만
일본에서 그를 데려오기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고
홍명보 역시
포항과 다시 만나며
은퇴도 이 곳에서 하고
미래도 논의하는 등,
서로가 어느정도
장기적인 플랜을 계획하던 찰나
돌연
포항으로써는
그에게 투자했던 돈과 함께
여러가지로
난감해진 상황이 되었던 것.
.
.
.
미국 진출 후,
활발해지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가 LA갤럭시로 이적한 건
그렇게 그는
LA갤럭시에서 은퇴하며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1989년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되어
2002년까지
무수한 성과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쓴 선수이다.
.
.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어린 나이였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통해
외신들에게도
총명받는 선수로 평가 받았고
1994년 미국 월드컵,
동료 황선홍이 죽일(?)놈이 되었다면
월등한 경기력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활약이자
.
.
.
1998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홍명보조차
네덜란드의 아성을
잠재울 수 있는 여력이 없었는데,
하지만
주역으로 활약하며
커리어 최고의 정점을 맞는다.
4강을 확정짓는
마지막 PK 득점을 성공하며
환호하는
홍명보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장면.
.
.
.
2002 한일월드컵의
활약을 제대로 인정받아
골든볼이 올리버 칸,
실버볼이 브라질 호나우두였으니
.
.
.
월드컵 이후,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며
가볍게 거절했고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국대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감독을 맡게된 히딩크는
선수단의 정리가 필요했고
가장 리더가 되는
홍명보가 타깃이 되어
그와 일종의 기싸움을 벌이며
선수단 기합을 잡았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포백이
필요하다며
쓰리백에 특화되어있는
홍명보를 국대에서 제외하거나
벤치에 두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히딩크는 홍명보를 인정했고
중용받은 홍명보는
4강신화의 주역이 되어
그것에 보답.
.
.
.
1994년 미국월드컵 후,
그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주병진 토크쇼에
출연하여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절대 J리그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고
1997년,
그 발언이 무색하게
J리그 벨마레로 이적했다..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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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4강진출로 인해 모든 선수들은
병역혜택을 받았고,
후에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 사단이 이끄는 대표팀도
동메달을 따내며
병역혜택을 받았고
선수/감독으로써 병역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성적을 낸 유일한 축구인.
여담으로
홍명보 본인은
20대 초반,
군복무를 이미 수행했고
4대독자라
기간이 6개월이였다는..
.
.
.
독일 출신의
최고의 축구스타 중 하나인
베켄바워.
홍명보는 자서전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차례 표현했으며
아시아 베켄바워라는
본인의 별명은 가장 선호했다.
실제로
축구스타일이
아~주 흡사하진 않았는데
리더쉽이나
리베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얼추 비슷한 느낌??
실제로 베켄바워는
은퇴 후,
감독과 행정가로써도 성공했고
그러한 점이
홍명보의 롤모델로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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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할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맡고 있을 시절,
홍명보는 입단 제의를
받은 적 있으며
당시, 나름
홍명보와 플레이스타일이 겹치던
과르디올라가
장기적인 부상을 당하며
그를 대신할 선수로
반 할 감독이
홍명보를 원했던 것.
하지만,
결국 시대적인 상황상
그 당시
국내선수의 유럽진출은 어려웠고
지금까지도 홍명보가
그 때에 바르셀로나 또는 다른
유럽 팀으로 갔을 경우
성공했을 지에 대한
찬반이 나뉘고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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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명보 이야기 " 제목의
일본 만화가 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얼마나 일본이
홍명보를 축구선수로써
존경하고 인정하는 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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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장학재단을 본인 스스로 만들었고
200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자선축구대회를 열어
기부를 했고
다 모인 금액은 22억이
넘었다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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